작성일
2022.11.08
수정일
2023.12.12
작성자
김채희
조회수
70

[학술총서10] 부산 영화촬영지 답사기


 

 

 

[부산대학교영화연구소학술총서 10]


영화는 문화의 스크린에서 항구적으로 상영된다.
소박한 영화론은 흔히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시간의 발자국을 남기고 필름은 기억을 벽에 아로새긴다. 영화의 우주에 승선했던 많은 분들은 그들의 예술혼을 통해 인류의 문화라는 도화지에 영화의 발자국을 새겨놓고 예술의 심연 속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이륙하면서 예술의 역사 세계로 귀환하였다.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이율배반적 행위는 작가들이 예술의 장에서 세상과 만나는 고유한 방식이다.
영화는 프레임의 하구로 무수한 장소를 받아들였다. 그 장소는 촬영을 위한 일회적인 세트가 맨 앞줄에 서 있었으며, 도시의 골목과 배들이 정박한 항구 그리고 시간의 퇴적물이 수북한 오래된 한옥의 누마루로 목록을 이어갔다. 영화의 프레임에 등재된 장소는 사람이 살았던 생활의 공간이 최초의 전입자라면, 카메라가 채운 영화의 장소는 새로운 이주자다. 영화가 소환한 장소, 영화의 인물들이 살았던 장소, 영화의 기억으로 시간에 부식되지 않는 장소는 영화 세상에 하나둘씩 편입해온다. 영화의 영토는 이렇게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다만 우리가 일상의 과잉 속에서 찾아낼 수 없었거나 무관심한 시선으로 인해 후경에서 녹슬어갔거나 시간의 지층에 묻혀 다만 침묵했을 뿐이다. 우리의 답사는 영화의 지도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프레임으로 담아낸 장소의 주소 확인 작업에서 영화의 정서와 장소의 기억이 어떻게 만나고 상호 삼투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숨 쉬는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영화와 대면했던 풍경 그리고 영화가 지나간 발자국으로 인해 부산은 어떤 무늬를 만들어냇느냐는 질문을 손에 들고 영화 촬영지로 이름 붙여진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와 장소의 만남 그리고 그 장소에서 대면한 비가시적인 숨결을 바라보고 경청하기로 첫 번째 작업이 시작되다. 영화가 매개가 되어 호명된 그 장소와 부산의 묵은 주소가 빚어낸 견고한 정체성이 서로 길항하는 자취와 숨결을 가만히 글의 형태로 담아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2차 작업으로 귀결되었다.
영화의 촬영 장소는 영화의 지도를 통해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역사의 심연으로 접어드는 일종의 출구이자 창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답사를 통해 손으로 만지고 발걸음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세상을 향한 창이었다면 영화의 장소는 역사성과 예술성의 심연으로 향하는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 약도에 가깝다. 영화 지도 그리기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토양 안에 예술의 자리, 문화의 기미를 더듬어 땅에 막대기로 그리는 서툰 약도에 가깝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몸짓으로부터 부산은 영화제 개최 도시에서 영화 역사의 보고이자 문화의 두터운 지층을 가지고 있는 영화문화도시로 재 명명될 합당한 명분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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